새해에 수술을 받고 방문한 외래 진료에서, 또 다시 새로운 수술 일정을 잡았다. 예상한 일이었다. 퇴원한지 얼마 안 되어 눈물이 줄줄 흘렀기 때문이다. ‘눈물길이 막혔구나.’ 예상은 했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제 7번째 전신마취 수술이 될 터였다. ‘이번이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를 자꾸 반복하고 있는 거 보면, 함부로 ’마지막이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되는가 보다. 퉤퉤퉤
사실 최근 수술 후 몸도, 마음도 지쳐서 침대에 늘어져 있었다. 약을 바르려고 일어나 거울을 볼 때마다, 새로 난 흉터와 무감각, 부은 얼굴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청룡처럼 앞으로 나아갈 거라 기대한 새해가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한 탓도 있었다. 그러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어서 정신을 차리고 밖에 나갔다. 퇴원 후 3일 째 되는 날이었다.
그때부터 매일 2시간 씩 ’고압산소치료 (Hyperbaric oxygen therapy)를 받고 있다. 감염으로 수술과 항생제 치료를 병행하며, 보조요법으로 더한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있다. 안 떠지던 눈이 떠지고 붓기가 빠지는 걸 경험하며, 역시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한다.
주말, 휴일에도 지역 주민 진료를 위해 문을 여는, ‘응급의학과 365 primary clinic' 의원인 덕분에 구정 연휴에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고압산소치료를 받으러 갈 때, 내가 해야할 일은 딱 한가지다. ‘오늘은 넷플릭스 뭐 볼지’ 정해 가는 것. OTT에 익숙치 않았던 나로써는 꽤 큰 과제다.
덕분에 훌륭한 다큐멘터리와 영화 들을 섭렵하고 있는데, 오늘 본 ‘그린북 Green book'이 꽤나 명작이라 마음을 울린다. 마침 옷과 안경도 초록색으러 맞춰 입고 간 날이었다. 최근 정부의 일방적 의대증원 발표와 업무개시명령, 집단행동 교사 처벌, 단체 해산, 경찰 배치 등의 폭력적인 태도에 분노가 차 있었는데, 우리의 태도 그리고 나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품위 Dignity, 그리고 나 What am I.
“You never win with violence. You only win when you maintain your dignity.”
“So if I'm not black enough, and if I'm not white enough, then tell me, Tony, what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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