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마지막 날. 역시나 돌이켜보면 아슬아슬했다.
내시경실 풀타임 복귀를 하겠다고 덜컥 용기를 냈지만, 쉽지는 않았다. 아직 체력도, 마음도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 그만둘까, 쉴까 에 대한 고민도 수도없이 했다. 엄마는, 돌아가서 그동안 날 보살펴 주신 교수님들께 도리를 다하라 했고, 아빠는 내가 전문직이라 다행이라고 했다. 일반 직장이라면 한쪽 눈을 실명하고 복귀가 쉽지 않았을 거라 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내 마음 속엔 서운함과 이 길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힘들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인생이 온통 뒤바뀌는 대신, 한 단계씩 나아갈 곳이 있다는 건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한쪽 눈만 가지고도 이전처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자꾸 조바심이 났지만, 급한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갈 길이 멀었다. 내 인생에서 예측하지 못한 핸디캡을 안고,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해보자고.’
내시경을 다시 잡는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2D 모니터를 보는 내시경은 한 쪽 눈으로도 충분했다. 몸이 기억하고 알아서 움직였다. 내 시선을 이해하기 위해, 교수님도 한 쪽 눈을 감은 채 내시경을 잡으셨다. 평소 나를 많이 챙겨주었던 외래 간호사 선생님은, 막 복귀한 나에게 본인의 대장 내시경 시술을 부탁했다. 아마 내게 믿음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벅차고, 감사하고, 또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2배의 짐을 짊어진 남은 눈은 번쩍 거리는 불빛을 힘들어했다. 정신없이 내시경 시술을 하고 나면, 어느새 눈 주변으로 눈물 자국이 허옇게 눌러 붙어 있었다. 눈이 시리고 아프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약, 남은 한쪽 눈도 시력을 잃는다면.. 눈 앞이 캄캄해지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소스라치게 무서웠다. 눈이 아파할 때마다, 마음은 온통 복잡해졌고, 너무 욕심내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퇴근하면 온 몸이 쑤시고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체력관리가 관건이었다. Daily Habit이라는 습관 체크 시트를 다운 받아 홈화면에 넣어두고, 주 3회 산책을 하겠다는 다짐을 지켰다.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일단 걸었다. 어느날은 10초 정도 뛰었다가, 쥐가 나고 알이 배겨 혼이 났다. 역시 욕심은 금물인것을. 하지만 모르는 새, 몸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5월 중반부터는, 퇴근 후에도 체력이 조금씩 남아 이것 저것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본업과 일상에 적응이 되면서부터는,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던 단체들의 활동을 재개했다. 매 순간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았다. 보다 집중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도 있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하며 바쁘게 지냈던 그동안의 삶에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무언가 포기하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여전히 다양한 고민과 어려움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다. 6개월 전 사고 후,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구급차로 실려 오던 날, 다친 눈을 영영 실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감염으로 오른쪽 눈까지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로 마음 졸이던 날들을 생각하면, 정말 많은 것들이 좋아졌다.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동안 지켜봐주고 응원해준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나 자신, 정말 수고했다.
6월의 미션은, ‘운전’과 ‘운동’으로 잡아보려 한다. 나의 한쪽 눈을 도와줄 자율주행, 테슬라이프,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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