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hanks8

일기 Diary 다시 입원하게 되면서, 준비물로 방구석에 묵혀 있던 ‘5년 일기장’을 꺼내 왔다. 5년 전, 친구 @yuzu 의 추천으로 구입하게 된 5년 일기장이다. 친구는 5년 일기를 쓰면서, 매년 같은 날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또 무슨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왔는지 과정을 볼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2019년의 나는, 경험과 여행을 통해 자유롭게 세상을 탐구하는 1년을 보낸 후, 힘들기로 유명한 내과 레지던트 입국을 앞둔 상태였다. 당시 내가 해결하고 싶었던 삶의 질문은 ‘개인의 소소한 행복과 여유, 그리고 커리어의 성공과 성취가 공존할 수 있는가’ 였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사고를 하던 어린 나에게, 질문의 답변은 No였다. 인간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 선택하는 과정이, 그 사람 인생의.. 2023. 1. 23.
생존 Survival 조각조각 나서 일부는 사라져 버린 내 얼굴 뼈. 안구 주변의 뼈들이 부서진 탓에, 그리고 코와 연결되는 점막 장벽들이 무너진 탓에, 내 좌측 얼굴과 코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균을 막을 재간이 없다. 30대의 나는 정맥 항생제의 도움으로 한 차례의 위기를 잘 넘어갔지만, 40대, 50대, 60대, 70대의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말은, 내가 앞으로 견디고 싸워야 할 대상이, 남은 한쪽 눈으로 보게 될 좁은 시야가 아닌, 언제 어디서 들이 닥칠지 모르는 세균들과의 전쟁이라는 뜻이다.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잔뜩 긴장해야 생존할 수 있는 삶. 감염 징후에 촉각을 세우고 너무 늦기 전에 알아채야 지킬 수 있는 삶, 앞으로 나에게는 안심하고 마음을 내려놓을 여유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30대에 생존.. 2023. 1. 21.
함께 Together 예기치 못했던 합병증으로 재입원을 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는 새 많이 약해졌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당장의 모호한 운명에, 인간으로서 무력함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닳고 닳아 연약한 내면이 드러나 보이는 순간, 나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원래 강하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강한 인간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그중에도 자기 확신의 결핍과 끝없는 존재 증명 욕구에 시달리는, 그저 한 명의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위기들 앞에서 맞닥뜨리는 인간의 한계, 나의 한계는 온통 하찮고 허무할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약한 인간을 일으키는 것은 모순적이게도 또 다른 인간이다. 생각할 겨를 없이 닥쳐온 고난을 헤쳐 나가는 나에게, 삶의 의미를, 재미를, 그리고 가능성을 다.. 2023. 1. 20.
고프로 언박싱 (vs. 소니 ZV-1F) 공교롭게도 고프로 언박싱(unboxing) 영상이 완성되기 1시간 전, 나는 고프로를 팔려고 당X마켓에 올려둔 참이었다. 작년 10월경, (액티비티) 유튜버를 해보겠다는 큰 꿈을 안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고프로를 주문했다. 결제-주문-배송-도착-개봉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내시경실 모두가 알 정도로 나는 신나서 자랑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프로는 1~2번의 시범 촬영을 끝으로, 주인이 사고로 눈을 잃으며 그 쓸모가 없어졌다. 목적성을 잃은 그 물건은, 방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서는 눈에 밟힐 때마다 내 마음을 쓰리고, 또 허전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한때 큰 애착과 기대를 했지만, 상황이 바뀌며 마음도 바뀌는 경험은 누구나 흔하게 해 보았을 것이다. 결단이 필요하다는 무언의 압박과,.. 2023. 1. 13.
마음처럼 안 되는 월요일 아침 왠지 모든 것이 마음처럼 안 되는 날이 있다. 주말의 여파로 아직 덜 풀린 몸과 계속 쉬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월요일 아침이면 더 그렇다. 안락한 둥지에서 떠나는 도전을 시도했던 새해 첫 주, 아주 비장했던 첫 마음과는 달리 부끄럽게도 울고 짜는 한 주로 보냈다. 하지만, 새로운 둥지에 무사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연착륙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라 스스로 안위하며 새해 둘째 주를 맞이했다. 둘째 주부터는 조금씩 나의 기능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수술 이후, 이리저리 상한 몸과 마음으로는 힘들었던 일들 말이다. 빠져나왔던 대화방에 초대가 되고, 모임에 참여하고, 또 사람들을 만나면서, 역시 나 없이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약간의 안도와 또 한 움큼의 씁쓸함에 물든 채로, 나는 .. 2023.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