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30살에 대장암 수술을 하고 최근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의 투병기간에, 자신의 삶을 점철한 단어가 ‘생존’이었다면, 연주는 어땠을까 싶었다며. 말문이 막힌 나는,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생존’이라는 단어를 운운하긴 했지만, 암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내 시야는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경계에 놓여 있었고, 나의 정체성은 정상인과 장애인의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으며, 나의 역할 또한, 의사와 환자 그 사이 중간 정도에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그 어디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한 애매한 경계에 있었다.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보았다. 죽음의 공포가 드리운 암 투병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나의 시간도 나름 치열 했었는데.. 그렇게 반나절 쯤 지났을까, 깨달음을 얻는다.
나의 경계는 애매 했지만, 나의 사고 원인은 분명했다. 나는 나 때문에 다쳤다. 누구도 원망할 필요가 없었다. 하늘도 원망할 수 없었다.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불나방, 고장난 채로 달려가는 폭주기관차. 이런 것들이 당시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 들이었으니까.
내가 다쳤을 당시, 당장은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곧 생존을 위협받는 순간이 닥쳐올 것이었다. 무서웠다. 나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어서. 두려웠다. 관성의 법칙처럼 자꾸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의 무한한 에너지와 욕망이.
정리하면, 나의 단어는 ‘변화’였다. 나는, 나를 철저히 ‘바꿔야’ 생존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또다시 어딘가 다치고 문제가 생겨,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아프게 할 것 같았다. 그것만큼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디 인간이란 동물이 쉽게 바뀌는가. 살을 째고 주사를 맞는 물리적 통증은 쉽게 참아낼 수 있는 고통이었다. 아니, 어쩌면, 고통이라 말하기도 우스울 정도로 가벼웠다. 정말 인간을 힘들게 하는 고통은, 스스로를 스스로가 어찌하지 못하는 좌절에서 오는 무력감이었다.
그리고, 올해가 1달 남은 시점에 되돌아본다.
나란 사람은, 충분히, 변화 하였는가.
아직은 고민과 노력이 아주 많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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