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공허함을 담는다.
눈과 얼굴을 다쳐 당분간 화장하는 건 엄두도 못 내면서도, 나는 아이쉐도우나 아이라이너 같은 허상 같은 물건을 인터넷 소비 공간에서 찾아 헤맨다.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으면서, 잘 쓰지도 못할 헤어용품이 괜히 갖고 싶다. 당분간 운동은 꿈도 꾸지 못할 걸 알면서도, 운동복이나 스포츠용품을 구경하고, 요리하는 건 연례행사와 같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쿠킹 오일 같은 것들을 덜컥 사고야 만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소비(消費)’란 첫째로 돈이나 물자, 시간, 노력 따위를 들이거나 써서 없애는 행위를 의미하고, 둘째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재화나 용역을 소모하는 일이라는 뜻을 가진다.
합리적인 소비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소비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소비를 뜻하며, 이로써 최대 만족감을 얻을 때 그 효용을 발휘한다. 결국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주관적 ‘만족’과 그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적절히 계산하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반면, 비합리적 소비란, 다양한 사례가 있을 수 있는데, 본인의 소득에 비해 소비 지출이 과도하게 많아 가계 운영에 부담을 주는 ‘과잉 소비’, 타인에게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과시 소비’ (단, 과시 소비가 효용성을 발휘하는 경제적 수단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과시 브랜딩으로 이차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행태를 추종하여 따라 하는 ‘모방 소비’,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소비하는 ‘충동 소비’ 등이 있다고 한다.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하기 전에, 우리는 보통 이것이 ‘얼마나 비싼가’와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냐’를 두고 고민한다. 하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회비용을 의미하는 ‘얼마나 비싼가’와 대치되는 항목은 필요 여부보다 소비의 결과로 예상되는 주관적 ‘만족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해결되지 않는 욕구와 공허를 ‘소비’에 담는 현대인의 행위는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비록 합리적인 소비라고 볼 수 없을지언정, 내면이 공허하다는 것을 표출하는, 혹은 그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수단. 사실 ‘소비’만큼 쉽게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일상적인 행위가 또 있을까. 그렇기에 나를 포함해 많은 현대인들이 이 순간에도’ 네이버쇼핑’과 ‘쿠팡’ 등의 소비 플랫폼에서 헤매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어느 시점부터 인가 내게도 ‘소비’는 필요에 따라 물품을 구입하는 행위가 아닌, 자신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우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소비행위의 짧은 만족감으로는 반복적이고 깊은 인간의 공허를 모두 채울 수 없다. 욕구 불만과 공허함은 반드시 원인이 있고, 우리가 할 일은 그 원인을 찾아 마주 보고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쉬운 ‘소비 행위’는 어떻게 보면 효과적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수단 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쉬운 만족감을 위해 소비 플랫폼에서 헤매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생각한다. 아 내가 예전처럼 꾸미고 밖에 나가고, 운동을 틈틈이 하고, 잔뜩 요리해서 사람들과 함께 먹고 싶은 거구나. 그래, 그런 일상이 그리웠던 거구나 하고. (그래도 다이슨 에어랩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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