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들에 대해 생각한다. 있으면 좋은 관계와 있어도 되는 관계, 없으면 안 되는 관계와 혹은 없어져야만 하는 관계. 삶은 단편적이지 않고 유동적으로 흐르기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규정하고 싶어 한다. 규정하고 싶은 ‘마음’과 규정돼야 한다고 여기는 ‘강박’ 간에는 일종의 피아식별조차 어렵다. 결코 규정되지 않거나 혹은 절대적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크고 작은 고통을 받는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름지기 OO 관계 (친구든, 연인이든, 부모-자식이든, 상사-부하든 간에) 는 이래야 한다고 정답 아닌 정답을 정해 놓는다. 감정적, 체력적 여유가 있었을 때는 상대의 보폭에 맞추어 나도 조금은 움직일 수 있었는데, 여유와 함께 관계의 유연성 또한 잃어버렸다.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에는 넓게 끌어당기던 나였다면, 에너지가 고갈된 후에는 온통 선을 긋고 밀어내버리는 나다.
과정이라도 자연스러우면 좋으련만, 역시 30대는 어른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어른이’다. 조그만 말과 반응에 예민해지고, 찰나의 이성조차 들어올 틈이 없이 그저 꽉꽉 닫고 밀쳐내고 만다. 여기에 부끄럽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들로 칭칭 테이프 칠을 더 한다. 그렇게 해서 꽉 닫힌 공간은, 숨조차 편히 쉴 수 없이 좁고 답답하다. 아주 미숙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영속될 것처럼 보였던 관계도 상황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변화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물론, 허허실실 내주며 상대의 의중을 꿰뚫지 못해 가짜를 진짜로 착각하는 실수는, 누구든 인간 호구로 만드는 가장 빠른 지름길임에는 틀림이 없다. 객관적으로 힘든 사고와 예상외로 길어지는 투병 기간을 겪으며, 그동안의 ‘이것도 저것도 다 좋아’ 식의 우유부단한 관계 쌓기가 (자의 반 타의 반) 중단되었다. 다만, 자연스럽게 변하는 관계의 특성을 외면하고 깍둑썰기로 관계를 규정해 토막 내려는 것은, ‘칼로 물 베다 손만 다치는 꼴’이라는 깨달음이 남았다.
관계의 흐름에 대처하는 방법은, 한 템포 쉬어가는 것뿐이다. 다차원적인 인간관계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해서는 본질에 쉬이 접근할 수 없는 까닭에,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만 전체적인 형태가 겨우 보인다. ‘변화하는 현상’이 두려워 안달 내거나 쉽게 매몰된다면, 코끼리 다리에 코 박고 ‘진짜’인 관계를 알아차릴 시간을 놓치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 변함없이 꾸준히 유지되는 관계가 있다면, 그건 많은 확률로 상대방이 귀인이거나 적은 확률로 집착일 테니 둘을 현명히 구별하자.
지나 보니,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태도는, 한쪽에서 보면 편하고 다른 쪽에서 보면 비겁하다. 하나의 관계를 특정한 형태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여러 관계 중 깊이와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과정은 꼭 필요한 내 몫이었다. 어쩌면 지금껏 자신이 해야 할 몫을 행하기가 귀찮고 두려워서, 타인에게 비겁하게 미뤄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관계의 흐름은 유연하게, 관계의 우선순위는 명확하게.’
앞으로 꾸준히 생각하고 노력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윙크의사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 아빠는 눈이 두 개 잖아!!!!!” (0) | 2023.03.14 |
---|---|
끝이자 시작 (0) | 2023.03.02 |
피로 Tiredness 가 아닌 문제 Problem (0) | 2023.02.26 |
눈동자야, 너 참 예뻤었다. (0) | 2023.02.24 |
세상의 작은 초라함들에게 (0) | 2023.02.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