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외적 칭찬을 담기에 보편적인 ‘얼굴’ 이나 ‘눈’ 이 아닌, 구체적으로 ‘눈동자’였던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절대적인 눈의 크기는 작은 편이었는데, 상대적인 눈동자의 크기가 다른 사람의 것 보다 커서 였을까. 어릴 때는 공포영화 ‘주온’에 나오는 토시오의 눈 같다고 할 정도로, 내 작은 두 눈은 까만 눈동자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눈동자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으쓱하면서 다시 한 번 내 눈동자를 들여다 보곤 했다. 화려하게 예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선하고 깊어 보이는 구석이 있다 싶어 꽤 마음에 들었다. 간혹 거울 속 내 눈동자에 비친 또 다른 나를 쳐다보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거울을 볼 때 나는 눈동자를 기준 삼아 얼굴을 갸우뚱 하고 숙이는 오랜 버릇이 있었다.
안구가 파열되는 끔찍한 사고를 겪은 뒤, 내 한 쪽 눈은 지금까지도 감겨 있다. 외상과 염증으로 퉁퉁 부어 있을 때에는 꼭 소세지 처럼 굳게 닫혀 있더니, 요새는 붓기가 빠지고 운동 신경이 회복되서인지 실눈 처럼 조금씩 떠질 때도 있다. 변화를 감지한 가족들은 신기해하고 기뻐 했지만, 나는 어딘가 슬프다. 슬며시 떠진 왼쪽 눈꺼풀 아래로 흐리멍텅하게 다친 눈동자가 보이면 불편한 마음이 쿵 하고 내려 앉는다.
세상이 좋아져서 핸드폰의 어플리케이션이 종종 이전 사진을 보여주며 추억을 상기시킨다. 까만 눈동자가 가득 채워진 채로 살포시 웃고 있는 예전의 나는 참 예뻤구나 싶다. 객관적 미의 기준이 아닐지라도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라떼‘ 추억이 되었기에, 착각도, 칭찬도 무참히 허용된다. 얼굴 마비와 좁아진 시야는 익숙해졌지만, 잃어버린 한 쪽 눈동자 만큼은 아직도 가슴이 사무칠 정도로 아깝고 그립다.
흔하고 당연히 여겼던 내 눈동자와 얼굴을 잃어버릴 줄은 상상 못 했다. 그래도 머리나 척추, 팔다리 움직임은 온전하여 다행이다 싶지만,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위를 잃고 나니 상심이 크다. 되찾을 수 없는 나의 깊고 예쁜 눈동자여. 기억 속에만 고이 묻혀 있을 사랑스런 눈동자여. 너 없이 살아갈 주인도, 그리고 우측 눈동자도 어찌 기댈 구석이 없지만, 그래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너 참 예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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