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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의사 일기

고통에 대한 회고록

by 윙크의사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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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8 - [분류 전체보기] - 한쪽 시력을 잃었습니다.

 

한쪽 시력을 잃었습니다.

한쪽 시력을 잃었습니다. 2022년의 마지막 가을, 11월 첫 주 주말이었습니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교수님들과 병원 대강당에서 세미나를 같이 듣고, 또 뒷정리를 함께 했던 기억만 뚜렷하게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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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인 11월 6일 응급 안구 봉합술 (2.5시간), 11월 14일 유리체 절제술 (3시간), 11월 18일 다발성 안면부 골절 에 대한 재건술 (6.5시간) 까지 약 2주 동안 총 세 차례, 총합 12시간의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마취에서 깨는 순간, 좌측 안면부와 두피 쪽으로 강렬하고 타는 듯한 두통이 느껴졌습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도의 통증이었고, 그 실체가 가늠이 안 되기에 정말 힘들고 두려운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중환자실 한 쪽 구석에서 깨어 나 고통에 울부짖는 제 모습과 바쁜 업무로 무심한 의료진 사이에서 느껴지는 좌절에, 반드시 환자의 고통에 예민한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백번 천번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아마 그간의 일주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고통 난이도가 높았을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고통이 가져오는 본질은, 예측 할 수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통이 찾아 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PCA (Patient Controlled Analgesia) 버튼을 반복해 누르는 것과 또 다른 진통제를 찾는 것 말고는, 그저 이 통증이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5초만, 1분만, 10분만… 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저는 잠에 들어 있었습니다. 고통을 견뎌내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되 시간의 힘을 믿고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순간입니다.

 

예측할 수 없이 찾아오는 통증과 더불어 또 다른 전신마취 수술을 받고 견뎌내는 동안, 많은 분들이 안부, 응원, 위로의 메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도저히 핸드폰을 찾아 볼 엄두가 나지 않는 시기 였기에, 일, 광고, 알림을 더하니 카톡 메세지 600+ 가 쌓여 있네요. 끝나지 않을까봐 두려웠던, 고통으로 몸부림 치던 시기 또한 지나간다는 귀한 가르침을 더해, 천천히 차근차근 소식 전하겠습니다. 

 

고통에 점철되어 있던 시기 동안 오롯이 제 곁에서 마음 다해 돌봐주신 어머니와, 어떻게든 의안 보단 본래 눈의 형태를 보존해주려고 사명을 다해 애써주신 안과 교수님들과 선생님들, 매일 같이 상태를 살피고 챙겨준 소화기내과 교수님들과 동료들, 마음으로 기도로 함께 해주신 신부님, 수녀님들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 고통스런 시기가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분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더 큰 말썽 없이 잘 회복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는 좀 더 회복에 만전을 기해보려 합니다.

 

사진 출처: mexicangeniuses.com ​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비극적 사고로 평생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견뎌야 했던 멕시코 초현실주의 여류 화가 입니다. 평소에도 매우 좋아하는 인물 이었는데, 제가 이런 일을 겪게 되니 가슴에 더욱 큰 위로로 남습니다. 고통을 예술과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강인함과 용기, 인내와 소명에 존경을 표하며, 현재는 병원 밖 땅을 밟는 것이 소원인 철부지 “32세 입원 환자 서 O 주”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귀하게 얻은 두번째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또한 신중히 고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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