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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 “엄마, 나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나 다친 다음에 진짜 행복해. 나 안 다쳤으면 가족들한테 마음 터놓는 법도 모르고, 집에 잘 오지도 않고, 그렇게 살았을 거야.” “응, 엄마도 행복해. 아빠랑도 더 돈독해지고, 우리 연주도 자주 보고.” 한눈을 잃은 후, 나는 더 행복해졌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건 진짜다. 한쪽 눈으로만 보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서일 거라고? 글쎄, 모두가 예상하는 것보다 나는 훨씬 불편하다. 심지어는 투병 생활 내내 곁에서 함께 했던 엄마도 모를 만큼. 1. 시야 : 갈가리 찢어진 번개 모양의 지각이 왼쪽 시야에 남아 있어 오른쪽과 겹친다. 겹쳐 보이는 모든 장면은 뿌옇고 번잡스럽다. 찢어진 모양이 꼭 내 눈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2. 감각 : 왼쪽 뺨과 코, 입술까지의 .. 2023. 4. 10.
'따뜻함'이란 나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5배는 어른스러운 홍현이다. 사고 후 응급 수술받고 통증으로 헤매는 동안, 홍현이는 손수 만든 도시락을 병원까지 들고 왔으면서도 아파 보이는 날 배려해 아무 말 없이 돌아가 주었다. 아주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미안하던지. 거절에 서툰 나를 두고두고 배려하는 어린 동생의 깊은 마음은 날 오래도록 숙연하게 한다. 어리지만 어른 같은 홍현이는, 이번에는 환한 채광이 드는 자신의 공간에 나를 초대한다. 온종일 준비했을 것이 뻔한, (어쩌면 하루를 훌쩍 넘기는 고민과 노동이 필요했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정성 가득한 음식을 내온다. 사방의 따뜻함 속에서, 나는 사랑이 담긴 장어 덮밥을 꼭꼭 씹어 삼킨다. 난데없이 터진 울음은 이내 이어지는 깊은 대화와 유쾌한 웃음 속에 자취를.. 2023. 4. 10.
과거의 기록 기록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는 요즘, 과거의 나를 돌아보기 위해 모아두었던 오래 된 보물 상자를 꺼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결혼할 때 이런 작업을 하던데.. 과거와 달리 외눈박이가 된 나는, 내심 씁쓸함을 다시며 상자를 열어 예전 기록을 뒤적거린다. 예전 기록 속의 나는,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의심스러울 만큼 현재와 똑같다.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완벽주의 성향을 스스로 채찍질하고 있었고,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내면의 나 사이의 괴리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깨달음을 주었던 사실은, 그 와중에도 따뜻하고 고마운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는 것. 모든 것이 쉽게 변질되는 세상에서, 어쩌면 이렇게 가족의 사랑은 한결같을 수 있는지. 한편으로 무심 했고, 또 .. 2023. 4. 4.
모든 것이 나에게 달린 시대 우리는 모든 것이 자기 본인에게 달렸다고 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더 부유하거나 더 똑똑하거나 더 날씬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것은 본인이 먹거나 먹지 않은 음식 때문이며, 받지 않았거나 받았던 검진 때문이거나, 하지 않았거나 지나치게 많이 한 운동 때문이다. 혹은 내가 태어난 날과 시에 맺어진 운명 혹은 사주 때문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모든 일은 나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30세 중반, 나의 삶을 바꿔 놓은 사고는 나 때문인가? 내가 말을 좋아했고, 말을 타보고 싶었고, 몽골에서 말을 타는 동영상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고, 몽골에 날아가 말을 탔고, 그리고 몽골에서 만난 친구들과 외승을 하러 강원도에 갔고, 그리고 말에서 떨어져 눈을 잃.. 2023. 4. 4.
흉터 오른쪽 세 번째 손톱은 얼굴을 제외한 신체에 유일하게 남은 사고의 흔적이었다. 얼굴 뼈가 으스러지고 안구가 파열된 큰 충격에도 불구하고, 손톱을 제외한 팔다리가 멀쩡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당시 충격으로 흐물거리는 손톱이 걸리적거릴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불가피하게 닥친 아픔의 흔적을 어쩌면 본능적으로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능과 효율이 떨어진 인간의 핑계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힘든 일은 담아 두는 것보다 돌파하고 지나가는 편이 여러모로 현명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가시밭길이라 한들, 살짝 찢기며 나아가다 보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릴지도 모르니까.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도 결국 지나간다. 우주의 섭리에 따라 시간은 절대적으로 .. 2023.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