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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Organization ‘정리’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본다. 오래 묵은 것들의 끝인가 아니면 신선한 것들의 시작인가. 기존 것의 마무리인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위한 준비인가. 어쩌면 정리의 본질은, 그 중간 어디의 모호함에 담겨 있다 함이 진실일 것이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정리’라는 표현에 복잡 다양한 것을 담는다. 예를 들어, ‘책상을 정리하다’는 표현에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결의가 숨어 있고, ‘마음을 정리했다‘라는 표현에는 덤덤하고 구슬픈 감정 끝자락이 담겨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시작과 끝의 모호한 경계에 위치한 이 물리적 행위에 나 또한 많은 것을 담았다. 두 눈 성했던 과거 시절과의 이별을 고했고 한 눈으로 받아들일 미래와의 조우를 담았다. 두 눈 짜리 과거는 찬란했지만 동시에 어지러웠고, 한 눈 짜리 미.. 2023. 2. 8.
젊음 Youth ‘젊음 (Youth)’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이다. ‘젊은의사협의체’라는 의료계 단체 발족을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하고, 30대 중반에 접어드니 피부며, 운동 능력이며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젊음’, 이미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는 하찮고, 간절히 가지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취하기 어려운 단어. 돈으로도, 빽으로도 얻을 수 없는, 일종의 자연 섭리.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탈모약 등 SNS를 자꾸 잡아먹는 각종 광고가 대중들의 ‘젊어지고 싶은’ 욕망을 겨냥하는 이유다. 잃은 자에게는 쉽게 주어지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번은 주어진 것이 ‘젊음’이다. ‘내가 젊었을 때는~’ 하면서 많은 이들이 좋았든 혹은 힘들었든 시절을 추억한다. 하지만, 막상 그 시기를 지나는 이들은 이런.. 2023. 2. 2.
짜증 Annoying 병원에만 가면 짜증 내고 싸우게 되는 일이 생긴다. 몸 상태를 평가할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직전이라 잔뜩 긴장해 있는 데다가, 이놈의 병원은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게다가 길은 길대로 막히고, 주차는 왜 이리 어렵고, 외래 위치는 왜 이렇게 찾기 힘든지. 진료가 끝나고는 ‘내가 잘 알아들었나’ 혹은 ‘꼭 이건 물어봤어야 했는데’ 하는 미심쩍은 불안함과 아쉬움이 남아 내 머리는 온통 복잡하다. 마치 그동안 치른 시험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랄까. 틈새를 비집고 보호자는 자꾸 나를 재촉하거나, 혹은 어디론가 사라져 가뜩이나 힘든 나를 허둥지둥하게 만든다. 어디론가 흩어지고 사라지는 보호자를 양손에 꼭 붙잡고, 수납대에 번호를 찍으려는데, 양팔에 외투와 가방 하나씩을 걸치고 있자니 여간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 2023. 1. 30.
정보 Information 피로하다. 넘쳐흐르는 정보들 속에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다는 것이.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들을 분류하고, 또 다른 이들이 건네준 정보들을 주워 끼워 넣는 일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 가장 나아 보이는 옵션을 선택하고 또 그 선택을 정당화하는 과정이, 너무나 피로하다. 최선을 선택하기는 항상 어렵다. 아니, 어려운 것은 결과의 정당성과 합리성에 자기만족을 더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불확실성과 불안함을 안고, 나는 정보의 홍수에 잠겨 떠다니는 떠돌이가 되어 버린다. 떠돌다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 엄습한다.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무엇이 진짜고 가짠지 구분하는 일에도 지쳐 버렸다. 병원과 의사를 고르는 일에 지쳐있다. 얼굴 안쪽 뼈가 꽤 많이 부스러져서,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형태를 지탱하.. 2023. 1. 26.
연휴 Holiday 연휴 전체를 홀로 입원한 채 보냈다. 어렵게 와준 가족과 친구들도 얼굴 잠깐 보는 정도밖에는 할 수 없었다. 워낙 긴 연휴라 병원에 남아 있는 환자도 많지 않았다. 명절 연휴 기간, 당직 의사로 병원을 지킨 적은 있어도, 환자로 남아 있던 적은 처음이라 이 고요하고 황량한 분위기가 생소하다. 마치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온 듯싶다. 수술 부위 감염으로 재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많은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명절 연휴 끝나고 계획했던 나의 복귀, 일, 그리고 앞으로의 삶까지도. 엄마도 두 번째 입원은 첫 번째보다 감정적으로 더 힘든 것 같다고 하셨다. 마치 눈물 콧물 삼켜가며 산을 오르다, 정상을 앞에 두고 한참을 미끄러져 내려온 것 같았다. 무릎을 털고 일어나긴 했는데, 눈앞이 온통 흐려, 정.. 2023.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