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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13

아쉬운 끝맺음과 새로운 역할 2년 간의 소화기내과 펠로우 수련 과정이 끝이 났다. 얼굴뼈가 깨지고 한쪽 눈을 실명하는 사고를 겪고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힘겹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여섯 번 반복된 전신마취 수술과 세 번의 치열한 복귀, 두번의 거절 끝에 장애인으로 등록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생각해보면, 참 고집스럽고 독한 과정이었다. 1년간 동고동락한 동기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2년차로 남아 후배들과 또다른 1년을 보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선택에 책임지며, 끝까지 마무리하는 모습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이었다. 그 끝이 어떨지 마음 속으로 백번도 넘게 그렸지만, 지금과 같은 혼돈은 예상하지 못했다. 남겨진 이도, 떠나야 하는 이도, 못내 아쉽고 참담하다. ‘이제 어디로 가니?’ 라는 질문에, 곧 다시 환자복을.. 2024. 3. 1.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왜 그 때 그렇게 울음이 터져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들었던 병원에서 전반기 인턴을 마치고, 진료실에 감사 편지를 전하러 갔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바쁘게 환자들이 밀려오는 진료실에서 울음이 터진 절 앞에 두고, 어찌할 바 몰라 하시며 건네주신 ‘핸디 선풍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위안이 되었는지요. 외래 끝나고 연락할테니, 일단 얼굴에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으라던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사랑을 모두 느꼈습니다. 의사 면허를 따고, 긴장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의사로서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의무원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에도, 선생님께서는 인턴 의사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러주며 진심이 담긴 관심과 애정을 담아주셨습니다. 힘든 일은 없는지 걱정하고 챙겨주시는 모습에, 모든 것이.. 2024. 3. 1.
선택 The Choice 힘든 순간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불안한 마음이 어찌 들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서른 남짓, 앞으로 살아갈 삶은 그보다 더 긴 것을. 다만 나는, 뒤돌아 보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남은 한쪽 눈으로는 앞을 보자고 선택했을 뿐이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을 과감히 버리니, 아이러니 하게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었다. 파도가 모래에 스며들 듯, 생각과 마음도 서서히 적셔들었다. 내가 나를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뒤돌아 보지 않는 것을 선택하니, 감사하게도 많은 이들이 내 앞에 서 있다. 모든 것은 스스로가 선택하기 나름인 것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2023. 6. 11.
세상의 작은 초라함들에게 세상은 너무 크고 화려한 데 비해, 나는 너무 작고 초라해 보일 때가 있다.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고, 한 발짝 내밀면 살얼음이 언 호수처럼 와장창 깨져 물에 빠질 것만 같을 때. 덜컥 앞서는 무서움을 극복하고 조심스럽게 내디딘 한걸음에, 왠지 사방이 고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잔뜩 긴장한 나를 위로하듯, 차분하고 따뜻한 안개가 날 감싸 안는다. 나의 어려운 걸음들을 함께 지탱해 준 이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깨닫는 요즘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렇게 한 발짝씩 세상을 향해 내디뎌 보자. 2023. 2. 17.
슬픔 나눠 들기 내 삶에 예기치 못한 불행이 닥치면서, 타인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용기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달았다. 타인에게 생긴 큰 불행은, 사실 걱정을 빙자한 이야깃거리가 되기 쉽다. 그리고 선뜻 다가가기 어렵다는 부분도 안다. 하지만, 마음을 쓰고 용기를 내고 연락을 해 주는 것, 그리고 기꺼이 그 슬픔을 나눠주고자 나서는 것은, 그 어려움을 초월함으로써 당사자에게는 훨씬 더 가치 있고 숭고한 위로로 다가간다. 너무 큰 불행이라 생각되어 다가가기 어렵다면, 더 세심하게 마음을 쓰는 노력을 하면 된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그 또한 언어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문제다. 당사자 뒷편에서 잠깐 스쳐가는 걱정 혹은 연민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거기서 더 가까이, 그리고 기꺼이 앞으로 나.. 2023.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