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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8

바로 잡으려는 용기 12월이 되고 의안을 48시간 연속해서 끼고 적응하는 연습을 하면서, 눈의 염증이 심해져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또다시 좌절하게 됐었다. 쉰다는 어려운 결정을 한 뒤로 이제는 정말 다 괜찮아진 것 같은 자신만만한 느낌이 들던 시기 였다. 역시 자만한 인간은, 하늘이 가만 두지 않는 구나 싶었다. 앞으로 달려나가고 싶은 정신과, 이를 용납해주지 않는 육체가 서로를 잡아 끄는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라는 존재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고군분투가 버거워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다. 갑자기 인생에 닥친 이 모든 상황을 그 흔한 원망 하나 없이 삼켜냈는데, 자꾸만 앞을 가리는 문제들은 어떻게 감내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속이 꽉 막히고 체한 느낌이었다. 원래 인간 심리가 줬다 뺐으면 불안과 .. 2023. 12. 17.
내가 보는 세상, 세상이 보는 나 모든 경험이 새롭다. 불과 6개월 전에 찾아간 장소와 사람이, 지금은 새롭고 다르다. 그 흔한 '작년 이맘때'는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나는 그 사이 정상인에서 장애인이 되었고, 한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보는 세상은 많이 달라졌는데, 세상이 보는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는 외모는 짝눈을 가진 사람 정도로 회복했고, 기능적, 사회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다. 어찌 보면 매우 감사한 일이다. 다만 공짜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다.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이 다행이긴 한데, 가끔은 억울한 마음도 든다. 내가 보는 달라진 시야와 삶의 불편함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남들은 나를 당연히 이전과 똑같이 받아들인다. 나의 달라진 세상에서, .. 2023. 6. 4.
눈이 떠져요 성형외과 외래 진료실을 방문했다. 3개월 만이다. 작년 11월, 서른셋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안구가 파열되어 한 쪽 시력을 잃었고, 올해 1월, 부러진 얼굴 뼈를 붙여 둔 임플란트에 농양이 생겨 다시 입원했다. 올해 3월, 가까스로 의사 본업으로 복귀했으나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반쪽은 의사, 반쪽은 환자로 살며, 두 존재 모두의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5월, 기적적으로 상태가 좋아져, 의사라는 본업으로 완전 복귀에 성공했다. “교수님, 저, 눈이 떠져요” 양쪽 눈을 모두 뜨고 깜빡이는 나를 보며, 교수님은 “전생에 좋은 일을 했나 보다”고 했다. 그토록 심한 사고 이후, 눈꺼풀이 다시 떠지고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고 했다. 감사.. 2023. 6. 4.
드디어 내시경실로 복귀, 또 다른 고민의 시작 5월의 마지막 날. 역시나 돌이켜보면 아슬아슬했다. 내시경실 풀타임 복귀를 하겠다고 덜컥 용기를 냈지만, 쉽지는 않았다. 아직 체력도, 마음도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 그만둘까, 쉴까 에 대한 고민도 수도없이 했다. 엄마는, 돌아가서 그동안 날 보살펴 주신 교수님들께 도리를 다하라 했고, 아빠는 내가 전문직이라 다행이라고 했다. 일반 직장이라면 한쪽 눈을 실명하고 복귀가 쉽지 않았을 거라 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내 마음 속엔 서운함과 이 길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힘들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인생이 온통 뒤바뀌는 대신, 한 단계씩 나아갈 곳이 있다는 건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한쪽 눈만 가지고도 이전처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자꾸 조.. 2023. 5. 31.
끝이자 시작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끝과 시작은 마치 기차의 분절처럼 네모반듯하게 분리될 것 같지만, 사실은 퍼즐처럼 잘게 나눠진, 실제로는 연속된 조각들의 모음집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지난주에 모 병원 소화기내과 펠로우 송별회가 있었다. 작년 말 다쳐서 실려 왔을 때부터 따뜻하게 날 보살펴주고, 힘들 텐데도 묵묵히 빈 자리를 채워주었던 선배, 동료 펠로우들과 작별하는 자리였다. 함께 시작했지만 유일하게 남아, 아직 성치 않은 몸으로 동료들을 배웅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고마움과 미안함과 아쉬움이 담긴 나의 소회는 시작부터 울컥거린다. 1. 인생의 큰 변화와 시련을 겪었습니다. 2. 다친 저를 가족처럼 아껴주고 보살펴주신 덕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3. 내과 의사로서의 꿈을.. 2023.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