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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꿔야 살 수 있는 삶 최근에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30살에 대장암 수술을 하고 최근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의 투병기간에, 자신의 삶을 점철한 단어가 ‘생존’이었다면, 연주는 어땠을까 싶었다며. 말문이 막힌 나는,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생존’이라는 단어를 운운하긴 했지만, 암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내 시야는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경계에 놓여 있었고, 나의 정체성은 정상인과 장애인의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으며, 나의 역할 또한, 의사와 환자 그 사이 중간 정도에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그 어디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한 애매한 경계에 있었다.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보았다. 죽음의 공포가 드리운 암 투병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나의 시간도 나름 치열 했었는데.... 2023. 11. 30.
마주 하기 뭐든지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어렵다. 현실의 인간세계는 대체로 꽤나 고달프기에, 눈을 질끈 감거나 자꾸 피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현실이 아닌 가상의 것을 믿기도 하고, 현재가 아닌 미래의 것에 기대기도 하고, 혹은 그조차도 안 되어 지나가버린 과거의 것에 머물러 있기도 한다. 모든 것이 고달픈 지금을 피하고 싶은, 인간의 작은 욕망이 아닐까. 현실을 온통 피하고 도망 다니던 나는, 다시 하나씩 마주하는 연습 중이다. 눈을 굴리면 티가 나서 앞만 보게 만드는, ‘의안’을 다시 끼기로 한 것이 그 첫번째 시작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색하고 싫었는데, 이제는 뭐 꽤 괜찮고 맘에 든다. 역시 많은 경우, 정면 돌파가 답이다. 언젠가 교수님은, 어떤 눈이 다친 눈이냐고, 심지어 의안이 .. 2023. 11. 26.
엄마 생일 날 엄마 생일(신) 날, 우리는 아침 일찍 병원에서 만났다. 외래를 차례로 들르고, 서류들을 발급받고, 수납하고 음료수를 사는 동안, 엄마는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글씨를 크게 키운 카톡창을 들여다 본다. 아마 생일 맞이 축하를 보내주는 사람들에게 답장을 하고 있겠지. 같이 외래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보면, 70대 노모를 모시고 온 50대 딸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경우가 바뀌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일인가. 환갑을 맞이한 보호자를 대동하고 진료에 올 때 마다, 불효막심한 30대 딸은 마음이 아프다. 차로 이동하면서 내가 물었다. “엄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엄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혼 전으로” 라고 대답한다. 처녀 시절의 엄마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하고 싶은 것은.. 2023. 7. 30.
수술방의 인연들 “연주야 괘안노 대단하다 잘될거다” “누나 저 XX에요. 수술 잘 받으세요” “언니 마음 놓고 푹자. 옆에 있을게“ “연주야 걱정 마라. 최선을 다하마” “언니 괜찮아요? 아파요?” 수술방에서, 회복실에서, 인생의 귀인들을 많이 만났다. 인생의 위기는 이런 인연들 덕분에 귀한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모든 지나간 일들에는 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시의 내가 진심과 최선을 다 했다면, 말이다. - 응원해주시고 걱정해주신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앞으로 남은 단계들도 차곡차곡 나아가볼게요 😉 2023. 7. 30.
내가 보는 세상, 세상이 보는 나 모든 경험이 새롭다. 불과 6개월 전에 찾아간 장소와 사람이, 지금은 새롭고 다르다. 그 흔한 '작년 이맘때'는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나는 그 사이 정상인에서 장애인이 되었고, 한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보는 세상은 많이 달라졌는데, 세상이 보는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는 외모는 짝눈을 가진 사람 정도로 회복했고, 기능적, 사회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다. 어찌 보면 매우 감사한 일이다. 다만 공짜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다.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이 다행이긴 한데, 가끔은 억울한 마음도 든다. 내가 보는 달라진 시야와 삶의 불편함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남들은 나를 당연히 이전과 똑같이 받아들인다. 나의 달라진 세상에서, .. 2023.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