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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의사 일기84

피로 Tiredness 가 아닌 문제 Problem 거품뇨가 나왔다. 지금 먹고 있는 경구용 항생제 두 종류에 더해, 주사 항생제를 맞기 시작한 지 이틀째부터 그랬다. 내과 수련 기간에 썼던 항생제 중, 독하기로 유명했던, 그래서 환자들의 신장 수치가 행여나 올라가지 않을까 매일 피검사를 해야 했던, Glycopeptide 계 항생제를 추가한 탓일 테다.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내 몸이 어떻게 되어가는 걸까. 여기서 더 망가지고 있는 건 어쩌면 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 마음이다. 몸이 지쳐가는 만큼, 마음도 구석구석 지쳐간다. 그렇다고 푹 쉰다고 나아지는 종류의 피로(Tiredness)는 아니다. 이건, 끝이 보여야 해결되는 일종의 문제(Problem)이다. 아주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내가 의사라 알 거라고 생각하는지, 사람들은 계속 “.. 2023. 2. 26.
눈동자야, 너 참 예뻤었다. 눈동자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외적 칭찬을 담기에 보편적인 ‘얼굴’ 이나 ‘눈’ 이 아닌, 구체적으로 ‘눈동자’였던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절대적인 눈의 크기는 작은 편이었는데, 상대적인 눈동자의 크기가 다른 사람의 것 보다 커서 였을까. 어릴 때는 공포영화 ‘주온’에 나오는 토시오의 눈 같다고 할 정도로, 내 작은 두 눈은 까만 눈동자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눈동자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으쓱하면서 다시 한 번 내 눈동자를 들여다 보곤 했다. 화려하게 예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선하고 깊어 보이는 구석이 있다 싶어 꽤 마음에 들었다. 간혹 거울 속 내 눈동자에 비친 또 다른 나를 쳐다보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거울을 볼 때 나는 눈동자를 기준 삼아 얼굴을 갸우뚱 하.. 2023. 2. 24.
세상의 작은 초라함들에게 세상은 너무 크고 화려한 데 비해, 나는 너무 작고 초라해 보일 때가 있다.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고, 한 발짝 내밀면 살얼음이 언 호수처럼 와장창 깨져 물에 빠질 것만 같을 때. 덜컥 앞서는 무서움을 극복하고 조심스럽게 내디딘 한걸음에, 왠지 사방이 고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잔뜩 긴장한 나를 위로하듯, 차분하고 따뜻한 안개가 날 감싸 안는다. 나의 어려운 걸음들을 함께 지탱해 준 이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깨닫는 요즘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렇게 한 발짝씩 세상을 향해 내디뎌 보자. 2023. 2. 17.
비효율 Inefficiency 효율에 집착하던 삶이 무너졌다. 특히 병원 진료받는 것이 그렇다. 예약 시간과는 무관한 것이 진료 차례이다. 이름이 호명 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한 채로. 보호자가 대동할 때는 2인분 때론 3인분의 시간을 빼먹는다. 진료 대상자인 아픈 본인은, 멀쩡한 보호자의 품이 두 배로 들어가는 것이 미안하다. 거진 두 배의 세월을 살아온 부모가 보호자인 경우는 특히나 그렇다. 안은 무척이나 고되겠구나 지레짐작하면서도, 진료실 밖의 수동적인 시간 흐름이 어색하다. 기다리라 하면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환자 입장이고, 그 마음이 그토록 슬프고 무기력한지 이전의 나는 몰랐다. 일부는 큰 소리로 화를 내곤 하는데, 정당하지는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 소동이다. 하지만, 경험상 안의 상황.. 2023. 2. 17.
대한민국 바이탈과 의사들이여 얼굴과 눈을 다쳐 전신 마취 수술을 세 차례나 받고 이후 회복하는 동안, ‘내과 전문의‘인 내가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본과 실습 때 다 보고 배웠던 것이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내과 진료에 집중하면서 다른 지식은 흘러 나가도록 두었다. 보통 큰 병원에서는 내과가 입원 환자가 제일 많은 데다, 고령의 중환자들을 맡고 타 수술 과들을 백업하기에 ’내과는 의학의 꽃‘이라고 불린다. 힘든 만큼 자부심도 높기에 ‘내과 자부심 (aka 내부심)’에 똘똥 뭉쳐 버틴다. 간혹 협진 요청을 하는 타과에게 까다롭고 예민하게 굴기도 해서, ‘내썅 (aka 내과X년)'이란 별명이 붙기도 한다. 응급실로 실려와 수차례의 안구 및 얼굴 뼈 복원 등의 수술과 회복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내가 알지 .. 2023.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