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윙크의사 일기84

세상을 떠난 친구 애플워치를 사 준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랜 만에 5km 러닝을 완주하고, 깔깔 거리며 맥주와 음료수를 마시고 돌아가던 찰나였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카톡을 열어보니, 너무나 익숙한 이름의 본인 부고 메시지였다. 그대로 멈춰서 한참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친구가 선물해 준 애플워치를 차고 한강 변을 뛴 그 날, 내가 건강해지길 바랬던, 몸도 마음도 컸던 그 친구는 속절없이 세상을 떠났다.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다. 내가 다친 것을 걱정하며,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고, 꼭 보자고 하고 찾아와서는, 피곤한 티를 내는 내 옆에서 자정이 넘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던 천진난만한 친구. 마치 보물상자라도 연 어린아이 마냥 기쁜 표정을 짓던 그에게는, 보잘 것 없던 시절의 우리 모습이 아주 소중.. 2023. 8. 20.
엄마 생일 날 엄마 생일(신) 날, 우리는 아침 일찍 병원에서 만났다. 외래를 차례로 들르고, 서류들을 발급받고, 수납하고 음료수를 사는 동안, 엄마는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글씨를 크게 키운 카톡창을 들여다 본다. 아마 생일 맞이 축하를 보내주는 사람들에게 답장을 하고 있겠지. 같이 외래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보면, 70대 노모를 모시고 온 50대 딸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경우가 바뀌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일인가. 환갑을 맞이한 보호자를 대동하고 진료에 올 때 마다, 불효막심한 30대 딸은 마음이 아프다. 차로 이동하면서 내가 물었다. “엄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엄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혼 전으로” 라고 대답한다. 처녀 시절의 엄마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하고 싶은 것은.. 2023. 7. 30.
수술방의 인연들 “연주야 괘안노 대단하다 잘될거다” “누나 저 XX에요. 수술 잘 받으세요” “언니 마음 놓고 푹자. 옆에 있을게“ “연주야 걱정 마라. 최선을 다하마” “언니 괜찮아요? 아파요?” 수술방에서, 회복실에서, 인생의 귀인들을 많이 만났다. 인생의 위기는 이런 인연들 덕분에 귀한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모든 지나간 일들에는 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시의 내가 진심과 최선을 다 했다면, 말이다. - 응원해주시고 걱정해주신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앞으로 남은 단계들도 차곡차곡 나아가볼게요 😉 2023. 7. 30.
꼭 지워야 할 나쁜 기억에 대하여 Bad memories erasers 부모님이 여행을 다녀오시며 내 손바닥 반 만한 지우개를 기념품으로 사오셨다. 연필을 잡아본 기억도 까마득한데, 지우개라니.. 이런 쓸모없는 물건을 왜? 라고 생각하던 찰나, 큼지막한 지우개에 적힌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띈다. ‘Bad memories eraser’ 내 시선을 눈치챈 엄마는,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신다. ‘아니, 가이드가 이거 많이 사간다길래.. 나쁜 기억을 다 지워주는 지우개래.’ 다친 딸을 남겨둔 탓에, 여행 기간동안 종종 아프고 불편했을 부모님의 마음이다. 커다란 지우개를 손에 들고 곰곰이 생각한다. 꼭 지워야 할 나쁜 기억이 뭐가 있을까? 일단, 끔찍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 기억은 (다행히도) 자연스럽게 삭제 되었다. 이후의 기억들은, 아.. 2023. 7. 15.
새로운 미션 사실 요새 좀 힘들었었다. 일상 복귀 과제를 억척같이 수행하고 나니 피로감이 밀려왔고, 또다시 쉴 틈 없이 몰려드는 일들을 쳐내지 못하니 숨막혀 죽을 것 같았다. 포기한다는 것은, 나같은 인간에게는 아주 쉽지 않은 행위다. 눈에 보이는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면 모든 것이 안정적일 줄 알았다. 하지만, 왠걸. 관계, 꿈, 돈, 사랑 등 추상적이고 사치스러운 욕구들이 빠르게 날 둘러쌌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까봐 두려운 마음과,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 서글픈 마음이 동시에 나를 힘들게 괴롭혔다. 의안 연습을 하면서, 보통 때보다 충혈되고 혼탁해지는 눈이 걱정됐었다. 의안사 선생님께, 위축되어 함몰된 눈을 교정하기 위해, 안구함몰 성형 수술을 받으면 어떻냐고 물었다. 이전까지 늘 온화한 표정이었던 의안사.. 2023. 7. 9.